PEOPLE | 이금숙 기자의 新명의 열전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백종우 교수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 불리듯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우울한 감정은 정신이 유약한 것이라는 편견 때문에 의사 등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를 꺼리다가 자살 등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세계보건기구 (WHO)에 따르면 한국의 우울증 환자는 성인 인구의 4.54%인 214만5000여 명 (2016년 기준)이다.
그러나 실제 우울증으로 진료받은 환자는 64만 명에 불과하다(2016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숨겨진 환자가 150만 명에 이를 수 있다는 얘기이다. 우울증은 치료를 받아야 하는 뇌질환으로, 우울증에 걸리면 의욕이 없어져 혼자 극복하기가 어렵다. 우울증 치료 명의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백종우 교수를 만나 우울증의 모든 것에 대해 들었다.
우울증 원인
우울증이 생기는 원인은 스트레스 같은 환경적인 요인, 뇌의 세로토닌 감소와 같은 유전적 요인이 언급되는데요. 둘 중에 어떤 요인이 우울증 발병에 더 큰 영향을 미칩니까.
과거에는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을 나누어서 보는 경향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후생유전학 연구의 발전으로 유전자 발현에 환경이 미치는 영향이 규명되면서 통합적으로 보는 편입니다. 즉, 우울증에 취약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더라도 좋은 환경이라면 유전자의 발현을 막을 수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정신질환 중에서 유전적 소인이 강한 병은 조현병과 조울증이고, 우울증은 이런 질병보다는 유적적 소인이 덜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울증은 여성이 많습니까, 남성이 많습니까.
우울증은 모든 나라에서 여성에게 많이 나타납니다. 우울증뿐만이 아니라 공황장애, 불안장애와 식이장애 역시 여성이 2~3배 많습니다. 반면 남성은 중독 관련 질환의 유병률이 여성보다 크게 높습니다. 결국 합치면 남녀의 정신질환 유병률은 비슷합니다.
어릴 적 트라우마도 우울증 발병에 영향을 미치나요.
아동기 트라우마는 성인기 우울증의 중요한 원인이 됩니다. 실제 진료실에서도 우울증이 잘 낫지 않는 환자의 경우 자세히 원인을 찾다보면 아동기 트라우마가 발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신 분석에서는 ‘Within Child’라고 하여 ‘내 안의 아이’, ‘내면의 아이’라는 개념을 자주 사용합니다. 이 개념은 어릴 때 경험한 정신적 충격이나 슬픈 감정이 뇌의 해마에 기억으로 저장되고, 성인이 돼서 스트레스 상황이 됐을 때 어린 시절 상처받은 나로 돌아가 다시 우울해하는 것입니다. 성인이 돼서는 어릴 때와 달리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만한 힘이 있지만, 어릴 적 트라우마 때문에 극복하지 못하고 우울감을 토로하는 것입니다.
사고나 재난 같은 트라우마도 우울증을 유발하나요.
전 국민의 60%는 사고, 재난 같은 커다란 트라우마를 겪는 것으로 조사돼 있습니다. 사고, 재난 같은 외상적 사건을 경험한 뒤 1~2개월간은 불안해하고 슬픈 감정이 드는 것은 정상이지만, 이런 감정이 계속되면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의심해야 합니다.
사고, 재난을 겪은 사람의 80%는 괴롭지만 받아들이고 회복을 하지만 10~20%는 과도하게 불안해하고 우울해하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가 남습니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 환자의 60%는 우울증을 동반합니다. 그래서 최근 사고나 재난 이후 정신건강을 살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 정부는 사고나 재난 후 72시간 내 사고 현장으로 재난응급정신의료팀을 보내 정신건강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수시로 처참한 시신 등을 보는 소방관의 우울증 유병률이 일반인에 비해 4.5배 높다고 합니다. 우울증이 많은 직업군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소방관처럼 국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재난과 사고 현장에 자주 노출될 수밖에 없는 직업인들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의 유병률이 매우 높습니다. 군인, 경찰 등도 비슷한 경우입니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가 우울증을 동반하거나 기존 우울증을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우울증의 유병률 역시 높습니다. 이렇게 트라우마에 노출되는 직업이나 과로, 직장 스트레스, 교대 근무 등도 우울증의 위험을 높이는 요인입니다. 문학과 예술과 관련된 직업도 우울증, 조울증의 비율이 높습니다. 이는 감정을 깊이 경험하는 직업의 특성일 수도 있고, 고통을 창작으로 승화하려 문학이나 예술 관련 직업을 택한 분들의 특성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SNS가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교수님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SNS는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이 가능하지만, 상처도 많이 받습니다. 몰라도 됐을 사람들에게 받는 악플 때문에 상처를 받는 것입니다. 또한 피드백이 빨라 사람들을 점점 즉각적인 만족을 원하게 만들고 있어, 반응이 오지 않으면 우울함을 느낍니다. 실제 진료실에도 SNS를 하면서 소외를 경험하거나 악플을 당하고 고통을 호소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SNS를 하면서 우울한 감정을 느낀다면 SNS와 멀어지는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이 좋고, 현실의 인간관계를 통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 시간을 가지길 권합니다.
우울증 증상
우울증 환자가 자신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인지하는 경우가 얼마나 되나요.
우울증으로 진단받은 사람에게 본인이 우울증을 인지했느냐고 물었더니 30%만 ‘인지했다’고 답했다는 2005년 조사가 있습니다. 13년이 지난 지금은 우울증 인지율이 70% 정도 됩니다. 과거에는 우울증에 대한 편견이 심해 우울증을 불면증으로 인식하거나 신체 증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실제로 우울증이 있으면 불면, 식욕저하, 소화장애, 두통, 심계항진(심장 두근거림) 등의 신체 증상이 나타나는데, 이를 병으로 생각하고 여러 가지 검사를 반복적으로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울증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고, 과거에 비해 우울증에 대한 편견이 개선되면서 인지율은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우울증 환자들은 자신의 감정을 주로 ‘슬프다’라고 표현 하나요. 우울증 증상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슬프다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진료실에 꼭 없어서는 안 될 것이 ‘티슈’입니다. 제 진료실에는 한 달에 한 통 이상의 티슈가 필요합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괴롭고 슬프다면서 눈물을 흘리고 대화를 나눕니다. 우울증 진단 기준의 첫 번째가 지속적인 슬픔입니다. 그리고 이전에 나를 즐겁게 하던 어떤 것도 재미가 없고 의욕이 없어집니다. 식욕도 저하돼 밥이 돌을 먹는듯 맛 없고, 잠도 안 오고 불안함을 느낍니다. 이렇게 살면 뭐하나 싶고, 지금까지 잘못 살아온 것 같고, 나 같은 못난 사람에게는 아무 희망이 없는 것 같아 자살까지 생각하게 되는 것이 우울증의 전형적인 증상입니다.
가족이나 동료가 우울증을 파악할 만한 단서 같은 것은 없나요.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자신이 우울하다고 표현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신 일에 대한 의욕이 떨어지고,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생산성도 떨어지고 자꾸 실수를 합니다. 이때 훈계나 지적을 하면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이를 비난으로 받아들이고 더 위축되며 우울증은 악화됩니다. 일을 잘하던 사람이 이러한 변화가 나타나면 우울증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 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배우 유아인의 SNS상에 글을 보고 조울증을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SNS 글을 통해서도 우울증을 파악할 수 있을까요.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의사에 대한 징계 논의가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 시작됐습니다. 물론 몇 가지 중요한 단서를 통해 조울증과 우울증을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환자를 직접 보지도 않고 함부로 조울증을 진단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미국에서는 ‘골드워터룰(Goldwater Rule)’이라고 하는데, 의사윤리에 포함됩니다. 혹시 누군가가 우울증 등이 의심된다면 환자를 직접 돕는 것이 맞지, 공개적으로 SNS상에서 진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자살
우울증이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는 얼마나 되나요.
우울증 환자의 60~70%가 자살을 생각하고, 15%는 실제 자살을 시도합니다. 특히 중등도 이상의 우울증에서는 자살 위험이 있으므로 이를 예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실제 해외의 자살 사망자를 대상으로 한 심리부검연구에서는 자살 사망자의 95%가 정신질환을 진단할 수 있는 수준의 증상이 있었고, 정신질환의 80% 가까이가 우울증이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중앙심리부검센터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자살자의 88%에서 정신질환을 진단할 수 있었습니다.
우울증으로 자살한 사람은 중증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이해하면 되나요. 우울증 환자는 어떤 과정을 거쳐 결국 자살에 이를 수 있나요.
그렇습니다. 자살을 촉발한 직접적인 원인은 매우 다양합니다. 젊은 층의 경우는 취업 스트레스, 40~50대는 경제적 스트레스, 60대 이상은 신체질환으로 인한 고통 등이 주로 자살 촉발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스트레스를 피할 수 있는 인간은 없습니다. 수많은 스트레스가 원인이 될 수 있지만 사실 주변의 도움도 받고 사회적 안전망으로 위기를 넘기기도 하고, 그 사회 문화의 영향도 많이 받습니다. 이런 스트레스와 이로 인한 위기 상황이 자살이라는 최악의 선택까지 가는 데에 우울증이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한국은 2003년부터 10년 이상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의 자살률이 높은 이유, 여러 공공의 노력에도 줄지 않는 이유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우리 사회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취했습니다. 하지만 빠른 발전에 명암이 있습니다. 여러 사건 사고와 인재 등 안전에 대한 투자가 부족했고, 신체 건강과 함께 마음의 문제를 챙기지 못했습니다. 선진국도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되는 시점에서 정신 건강의 문제가 사회적 아젠더로 논의되고 해결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도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하고, 자살을 예방 가능한 것으로 인식하고 적극적인 대책을 세우면 자살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살 방법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언론 보도에 대한 문제점이 계속 제기되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자살 방법은 물론이고, ‘자살’이라는 단어도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는데요. 교수님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오스트리아에서는 자살을 보도하지 않기로 한 언론지침을 시행한 후 자살이 현저히 감소하기도 했습니다. 잘 알려진 바대로 자살에는 ‘베르테르 효과’(유명인 또는 평소 선망하던 인물이 자살할 경우, 그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해서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가 있습니다. 어떤 한 사람의 자살이 자살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심각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고, 이를 언론보도가 매개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자살에 대해서는 아예 보도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공인의 경우나 어쩔 수 없이 보도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최소한 자살 수단은 적지 않아야합니다. 최근 샤이니 종현(27)의 사망 후 안타까운 사건을 다룬 해외언론은 거의 자살 수단을 언급하지 않았고, 기사 하단에 이 기사에 영향을 받는 사람은 자살예방 전화를 이용해 상담받을 것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우리 언론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울증 치료와 극복
우울증은 정말 스스로 해결할 수 없습니까? 꼭 치료를 받아야 하나요.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PEOPLE | 이금숙 기자의 新명의 열전